ARTIST NOTE

2022.07.03

어느새 어리다고만은 할 수는 없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좋아했던 작가들이 내 나이 즈음에 써냈거나, 그렸던 작품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위대하니깐, 그들은 나랑 시대가 다르니깐 나는 늦게 시작했으니깐 미래에 나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등 모든 핑계를 제쳐두고, 수준이라는 것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배움을 향했던 수많은 물음과 존재의 흔들림이 어느 순간 그치고 자기가 겪어온 삶을 통해 자기가 해석한 세계가 드러나고, 그것이 확정이전의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불변할 수 없는 무엇으로 스스로 자리매김할 때, 표현 하나에도 그것이 배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는가,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자기 양식과 표현력을 갈고 닦았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불혹의 나이에 닿기 전까지 해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계속 조용한 싸움을 해야한다.


 

2022.07.04

닦아내고 긁어댄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감싸안지 못하는 마음을. 어제 순수한 것 순진한 것은 좋은게 아니란 말을 들었다. 바보같이 당하고만 살게 되니깐, 그 말에 아무런 대꾸를 못했지만 한켠에 쓸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자연은 당연한데 자연에서 태어난 우리 인간만 왜 그게 안될까 생각이란 것 때문일까 있는 그대로 만나고 있는 그대로 봐주고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드나들고 그런건 꿈에서나 가능 한 일일까, 그래도 꿈을 계속 노래라도 해야지

 

2022.07.18

이토록 소란스러운 가운데,
우리는 고작 몇번이나
자신의 본성에 고요함을
스스로 찾아준 적이 있던가



 

2022. 06. 25

어린 시절 부터 고정된 관념을 누군가가 내게 강요하면 나는 늘 그 반대로 행동 했다. 이유를 납득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세상 모든 것이 본질과 반대로 되어있는 모순덩어리인 것처럼 보였다. 존재 이유와 의미를 스스로 찾을 시간을 주지도 않고 모든 걸 급급하게 만드는 사회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모른 채 정해진 길만을 가라고 압박하는 것 같은 사회에 질식할 거 같았다. 그러한 생각이 이어져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이유가 되었고, 어린 시절 꿈이 없이 겉돌며 방황했던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때 예술이 내게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었고, 주제넘지만 예술가들은 나와 같이 고정관념을 거꾸로 보고 그것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라 느꼈다. 영원히 잊히지 않을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라는 그림을 보고 나는 미술이라는 것에 관심이 생겼고 나도 그림을 그려야겠다 마음을 먹게 되었다. 낮의 풍경 속에 밤이 동시에 그려져 있는 그 그림을 보고, 예술가들은 세상이 옳다고 보는 인식과 관념 너머를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그 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2년 동안에도 그림은 거의 그리지도 않고 철학과 미술사를 먼저 공부한 것도 그리는 기술보다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전 사람들이 그것을 표현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나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보니 오히려 나는 지금 왜 그런 고정관념들이 사회에서 생겨나고 필요로 하는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때와는 달리 사회에서 생겨나는 관념들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예술이라는 것은 결국에 자기다움으로 사회에 만연한 고정관념에 대해서 그것 너머의 본질을 상기시킬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과 반의 합이라는 말이 있듯 세상이 입자이자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듯 질서와 자유로움이 합해져야 그 것이 완벽한 밸런스를 이룬다고 믿고 있다. 세상이 입자로만 세상을 보고 있다면 나는 진동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고, 세상이 진동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면 나는 입자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할 것이다.  세상의 모순을 역설할 수 있는 예술을 하고 싶다. 

2022.06.18

나는 무수한 반복을 통해 회화에서의 재현을 무력화하려는 것에 관심이 없다. 주제의 부재나, 정신을 수행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석고를 들어내므로 만든 선은 반복의 요소가 아니라, 다양성을 표상한다. 빛과 생명이라는 내 나름의 대상을 가지고 있다.

색채가 내면의 파동이라면 석고는 물질의 입자이다. 석고의 원래 흰색이 빛이라면 색은 물질의 고유성이다.  물감과 석고라는 재료의 역설적인 면을 다루면서, 작은 대상보다 포괄적인 대상을 잡고 싶었다. 비유 보다는 직접적인 재료와 표현방식으로서 내가 생각하는 중첩을 표현하고 싶었다.

빛은 입자이자, 파동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아내는 데 엄청난 시간과 희생을 치렀다. 그 상태를 현실의 현상에 대입해 살아나가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현상에 대한 역설이고 중첩상태의 생각이다. 그림 이전에 내 삶의 태도로서 뿌리 박혀 있던 것이다. 서로 다른 것을 감싸 안으려는 마음이다. 그 마음은 내 안에서 차갑지 않고 따뜻하게 늘 꿈꿔오 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모노크롬이나, 단색화를 모를 때부터 이어오던 주제이다. 그래서 내 작업은 반복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들의 다양성을 감싸 안고자 하는 마음을 화면 안에 담고 싶기에 반복을 마땅히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정신수행 만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고 싶진 않다.  감싸 안음이라는 존재의 공존을 다루는 그 지점 만은 그들과는 다른 내 안에서 언제나 살아 숨 쉬는 확고한 것이라 믿고 있다.

"해와 달과 어깨동무,
우주를 끼어 차고,
모두와 하나된다.
모든 것 혼잡한 대로 그냥 두고,
낮은 자리 높은 자리 무관하다.
사람들 빠릇빠릇,
성인은 어리숙,
만년 세월 온갖 일.
오로지 완벽의 순박함 그대로.
모든 것들이 모두 그러함 그대로,
그리하여 서로가 감싸안는다."

_장자

2022.06.14

내게 다른 무엇보다 그림이 중요했던 이유는 현실이나 사진이나 영상은 어떠한 대상을 통해, 대상 이면에 감춰진 것을 느낄 수 있게 하지만 그림은 어떤 대상을 완전히 감추고도, 느낄 수 있는 것을 그대로 그릴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되어 있는 유일한 영역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구상적인 작업을 할 때도, 인물을 그리고 그 얼굴을 지워가는 작업을 했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대상 자체를 아예 그리지 않기로
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왜 나는 그런 식의 작업을 해나가게 되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리고자 하는 것을 그리는 것 보다 그리고 싶지 않은 것을 그리지 않는 쪽으로, 보고자 하는 것만 보는 것 보다 보고싶지 않은 것들을 보지 않는 것으로 흘러가는 성향 때문이었던 거 같다. 내게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쾌감과 즐거움인 동시에 극심한 피로함의 상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다름과 개성으로 꽃피워나가지만 그 다름으로 인해 차별이 생기고, 분별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전자보다 후자에 대한 스트레스가 큰 사람이었던 거 같다. 자기다우면서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 잠깐이라도 쉬어 갈 수 있는 피로감이 없는 봄을 꿈꾼다. 그래서 나는 그림이 필요했고, 역설적이게도,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본다는 것을 통해 보지 않기 위함이고, 셀 수 없이 밀려드는 이미지들에게서 멀어지는 눈과, 마음의 쉼을 위한 것이었으면 했다.
구체적인 대상을 보지 않음으로도 지각할 수 있고, 감각할 수 있는 것들을, 본다는 것을 통해 다시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설렘이 계속 그림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은 아니였을까하고 생각한다.

2022.5.22

부산에 홀로 여행을 떠나던 기차 안에서 창밖으로 보이던 우리 강산의 뾰족하지도 너무 뭉뚝하지도 않은 너무나 묘하게 자연스럽고, 둥그스럼한 산의 능선들을 보면서 그토록 마음이 평온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 산 하나가 사람이라면 다 다른 선이면서, 주변의 모든 풍경과 어우러지는 리듬, 겸손하게 하늘을 받아들이면서 또 담담하게 자신을 세우는 땅의 리듬, 그러한 선. 그때 느꼈던 평온함을 그림으로 그려내자고 생각했다. 내 그림은 추상이 아니다. 지금에 내가 그리고 있는 선은 무엇인가 무수한 선들을 그어나가는 것을 감당해낼 수 있는 이유를 묻는다면 작은 선 하나는 내게 생명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들이 저마다의 리듬을 가지고 전체의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경계 없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2022.5.17
자연스러운, 너무나 자연스러운

내 삶의 지향점을 한 줄로 줄이라면 지금까지 삶에 가장 중요한 변곡점에 있었던 전시 주제인 자연스러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란 걸로 줄이고 싶다. 자연스러움이란 말은 내게는 참 알면 알수록 묘하고 묘하다. 그저 자연이 아니고, 그저 인간도 아니고 양쪽으로 나뉘면서도
양쪽을 포섭하고,종국에는 양쪽을 초월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2.04.15

이 시리즈를 계속 이어 나가면서 이것이 이제는 지금까지의 삶과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했었던 질문이었고, 그에 대한 내 나름의 대답을 해나가고 있는 과정이라는 걸 느꼈다. 화려한 것, 관념적인 것, 새로운 것을, 재밌는 것을 끝없이 갈구할 수밖에 없는 삶과 예술이라는 굴레에서, 진정 내 삶과 예술의 피부 아래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어떤 것이 있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 말이다.
새로워야 한다는 것, 재밌어야 한다는 것, 특별해야 한다는 것, 꾸며야 한다는 것, 똑똑해야 한다는 것, 잘나야 한다는 것 그림의 표면을 뜯어내는 것으로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그 욕망을 모두 거꾸로 하면 가장 자연의 본질에 가깝다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추구하는 것보다 의지로서 고요하고, 평범하고, 묵묵하게 견디어내는 모든 삶을 응원하고 싶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삶이니깐,

 

2022.02.24

조각적 회화, 

회화적 조각의 가능성

우리의 눈은 동전을 뒤집어야 뒷면을 볼 수 있다. 나는 늘 앞면과 뒷면, 그 양면성을 동시에 볼 순 없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구분 없는 어떤 인식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그래서 물감이 동전의 앞면이라면 뒷면은 그와 비슷하지만 반대되는 무엇이라면 좋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재료에서도 양가적인 것을 다룰 수 있고 그것을 하나의 결과물 안에 동시에 두고 싶었다. 물감이 색이라면 석고는 색이 없는 질감과 양감, 물감이 회화로 인식되는 물질이라면, 석고는 조각으로 인식되는 물질, 거기서부터 출발이었다.
다루다 보니 석고라는 게, 너무 빨리 굳어 버리고, 쉽게 깨어져 버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이 처음에는 석고라는 매체의 단점과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그 단점을 이용해 섞이지 않은 석고와 물감을 덧바를 수 있어 화면의 층을 만들 수 있었고, 석고의 약한 내구성을 이용해 손의 힘을 조절하는 것으로 화면의 균열을 내며 빛같은 선을 자유롭게 그려나갈 수 있었다. 그 때 작지만 매체의 승화를 이뤄낸 기분이었다. 회화라는 바탕 위에 조각이라는 빛이 춤을 추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내 회화가 조각적 회화가 되었다면  언젠가는 회화적 조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주제의식 안에서 나아가야할 지점이자,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이라 생각하고 있다. 재료와 기법을 역설함으로, 현상의 본질을 역설하는 것이 중첩이 되어야 한다.

22.03.23

그림 안에 형상(image)이 없다는 것은 형상을 통한 관념(idea) 또한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두 가지를 비워내면 무엇이 남을까 아무 의미도 없는 허무만이 있을 것인가 빛을 닮은 자신을 마주할 것인가,나는 형상과 관념이 사라진 곳에서 잠시나마 우리가 어디에서 왔었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기억을 다시 감각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런 그림을 계속 그려나가고 있다.

2022.03.16

내 그림은 평범하다 아니, 평범함을 지향하고 있다. 10년을 넘게 그리고서 시간이 내게 말해준 것은 나와 내 그림에 흔들리지 않게 해준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에 이상적인 것을 바라지 않는가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씨,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뛰어난 모습, 남들 보다 나은 내가 가진 것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 반짝반짝 빛나는 무엇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는 본능적으로 빛을 쫓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모르고 있지 않다. 우리 삶에 대부분은 우리가 매일 기대하는 바와 다르게 미세먼지에 뒤덮인 흐린 날씨, 나를 오해하는 사람빛나지 못하는 날들 내가 가질 수 없는 수많은 것들 속에 놓여있다는 것을, 가끔은 그런 평범하고 지루한 모든 것들이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한 단계 아래로 더 낮아질 때, 우리가 가진 그 아주 단순하고 밋밋하고도 평범했던 날들과 모든 것들이 얼마나 이상적이고도 아름다울 수 있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진부한 표현이겠지만 어쩌면 저 밖에 있는 빛을 쫓느라 우리 안에 발하는 빛을 못보고 있는 것인지 되돌아 보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 그림 속에서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하는 것이 아주 반짝반짝 빛나는 무엇을 만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없이 하루에 지나가고, 흘려보내는 모든 나와 내 주변의 평범한 것들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라 믿고 있다

 

 

2022.02.23

 

가끔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게 가장 듣고싶은 말이 되고, 아무것도 그려넣지 않는게 가장 와닿는 그림이 된다. 그걸 여운이라 해야할까,여백이라 해야할까 아니면 본질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나이갈 들수록 그 맛을 알게 되는 거 같다.

2022.01.19

나라는 존재는 내가 좋아했던 작가들 처럼 크고 묵직하고 깊지 못하다. 대신 크고 묵직하지 않은 만큼 가볍고 부드럽고 유연할 순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나도 언젠가는 그리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다 내려놓고 작은 나를 인정하며 지금을 나답게 나다운거 하면서 살기로 했다.

2022.01.16

조금의 슬럼프라 해야 할지, 방황이라 불러도 될지도 모르는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중압감이 생겼고, 모든 것이 딱딱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시도만 할 수도 없고 유지만 할 수도 없다. 그 애매한 상태에 스스로 짓눌렸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모든 결과물과 나의 페이스가
어느정도 내가 바라는 퍼포먼스를 내기를 무조건 적으로 스스로 강요하게 됬다고 해야 할까, 조금은 작업에서, 기존의 삶의 루틴에서 떠나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소소한 일상들과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에 집중했고, 몸에 습관처럼 베인대로 작업실에 나가 작업을 하면서도 좋아하는 미술이아닌 다른 것을 깊게 공부해보는 그 시간을 잘 보냈다고 생각한다. 삶에서도 그림에서도 완벽한 것도, 완전한 것도 없다. 선이 살면 색이 죽고 색이 죽으면 선이 산다. 내가 삶을 통해서, 작업을 통해서 세상을 통해서 배운 것은 그것이 자연의 법칙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어디에나 그 법칙 같은 것이 현상의 안에 존재하고 있다. 자연의 모든 것은 그 법칙에 순응하지만 사람만이 그래도 그 법칙 너머를 고민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 다 공존하고, 둘 다 같이 살 순 없을까 둘 다 같이 조화로울 순 없을까 하고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내비치며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것, 시도하는 것 말이다. 하나의 결과물에 다 담을 순 없겠지만 그렇게 시도하고 유지하며 걸어가는 긴 여정의 흔적을 멀리서 관조해 볼 수 있을 때가 오면 그 길의 균형이 제법 완전함에 가까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다시 제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가보려 한다.

 

2021.11.26

가사 있는 음악을 듣고 싶을 때도 있다. 몇 번 듣다가도 이내 말 없는 음악을 찾게 된다. 아니 음도 하나의 말이라면, 말이 명확하지 않은 음악을 찾게 되는 것일까, 말이 없는 말을 하는 음악을 찾는 것일까, 처음에는 단순히 이것도 하나의 순간의 빠짐이라 생각했는데, 벌써 몇 해째 나는 말 없는 음악들만을 듣고 있다. 말이 없는 음악들이 왜 좋을까, 좋은 가사들이 있는 음악들처럼 음악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따라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말이 없는 음악들은 삶에 스며드는 거 같다, 우리의 삶 전체를 음악으로 만들어 주듯이 삶에 주부가 아닌 배경을 주제로 하는 음악이라고 해야 할까, 휴머니즘에서 인간이 주인공이라면, 자연이라는 배경을 노래하는 음악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말이 없는 음악들을, 말이 명확하지 않은 음악들을 좋아하는 거 같다. 나는 무엇이든 간에 주인공 같이 내세우려는 것들은 조금 불편하다 나는 내 그림도 내가 듣는 음악들 같았으면 좋겠다. 말이 없는 그림은 불친절하다고 생각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런 내세우지 않는, 눈에 띄지 않는 것들, 명확하지 않게 삶에 부유해 있는 것들을 노래하는 것들이 너무나 겸손해 보이고, 너무나 중요해 보이고, 더 많은 것들을 느끼게 만드는 것 같아서 좋다.

21.11.22

이번 작업을 하는 동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커다란 지도를 그려놓고 땅의 윤곽선을 지워가는 것 같이 느껴졌다. 지도에는 하늘이, 빛이 그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커다란 지도에 하늘과 빛을 새겨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세상을 그런 느낌으로 늘 바라보고 싶은 것인 거 같다. 경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경계가 있는 동시에 경계가 없는 것을 느끼고자 하는 것. 하늘과 땅을, 빛과 색깔을 동시에 느끼는 것 말이다. 중첩이 공간과 공간을, 시간과 시간을 동시에 겹쳐놓고 바라보는 것이라면 그게 하늘과 땅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거 같다. 그런 생각으로 이 작업을 더 이어나가 보고 싶다.

2021.11.06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나는 섬세한 작업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 성격이 그렇게 생겨 먹지 못한 줄 알았는데 지금은 멀리서 보면 티도 안 날 정도의 작은 선이나 점을 수도 없이 화면에 새겨가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최근에 나는 정말 다른 작가들의 작업은 보지 않았던 거 같다 보면 영향을 받을까 봐 무섭기도 했고, 보다 보면 잡생각이 많아지고 불안해져서 그냥 내 작업만 생각했다. 갤러리에는 오랜만에 갔다. 발길 닿는 곳 몇 곳을 무작정 들어가 봤는데 외국 작가들의 작업이었다. 신기하게도 작품들을 둘러보는데 그날따라 작업이 조금 쉽게 만들어져 보인 느낌이 들었다. 내 착각 일까 하고, 보니, 그 작가들은 생각이 깊었다. 작업을 이끌어가는 맥락, 개념 이런 것들에 많이고민한 흔적이 느껴졌다. 맥락과 개념이 탄탄하다 보니, 여러 시도를 하고, 다양하게 그 생각을 펼쳐 보일 수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작업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 깊이를 선택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고민한 것에 이유를 캐묻고, 캐물으면 분명 깊이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서 일 것이다. 갤러리를 나와서 며칠 나는 깊이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섬세하다고 해서 무조건 깊은 것은 아니다. 생각이 많다고 해서 그것도 깊은 것은 아니다. 깊이가 무엇일까, 작가와 작업이 하나의 내용이라면, 그 충실성이나 무게가 본능적으로 깊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작가는 생각이 깊고, 어떤 작가는 행동이 깊고, 어떤 작가는 마음이 깊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이 깊은 사람은 못될 거 같다. 마음이 깊은 사람이 되고 싶고, 행동이 깊은 작업을 하고 싶다. 삶에 충실하고 작업에 성실하고 싶고, 정신이 깨어있고 싶다. 18, 19년도 하던 작업에서 한번을 더 겹친 게 20, 21년의 작업이고 21년 10월부터, 또 그 위에 한 번 더 겹치는 작업을 했다. 2022년은 최종적으로 한 번 더 겹치는 총 4개의 층을 가지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 그 이후에는 이 방식을 가지고 다양한 도상을 해 보고 싶다. 아무래도 나는 다작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작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흘러가는 선택이 때론 두렵기도 하지만, 깊이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계속 더 해보려 한다.

2022.11.01

나는 우리나라 한옥의 고유한 공간 미학인 중첩을 내가 가장 중점으로 하는 연작의 이름으로 가지고 오게 되었다. 우리나라 한옥에서 중첩은 한옥의 여러 겹 겹친 공간의 복잡성을 심미적으로 조화롭게 만드는 것인데 나는 그것이 우리나라 풍토와 그 정신에서 기인하고 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나는 한옥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한옥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한옥에서 담아낸 가치관이 나의 정서와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공간과 공간을 분리하지만 그것을 겹치어 하나로 볼 수 있는 것, 각기의 개별성을 하나로 통일시키려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가지를 동시에 하나로 보려는 인식과 가치관을 아주 오래전부터 깨어 있는 정신이라고 보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나라 한옥에 “불이 사상”이 담겨 있다고 느낀다. 나는 형식적인 것보다 그 가치관을 그림이라는 평면 안으로 가져와 공간과 공간,분리된 두 가지를 하나로 겹치는 과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021.10.21

작업이 숭고한 무엇을 다루길 바라고 싶었던 적도 있다. 지금은 그런 것들이 너무나 내게는 멀고 거창한 것 같이 느껴진다. 그냥 지금은 끈기 있게, 어떻게든 버텨내는 잡초의 생명력처럼 인고한 무엇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2022.10.08

소중했던 이에게 바치는 편지 

어쩌면 산다는 건 뚜렷한 의미가 있어서도 분명한 재미가 있어서도 아니고, 산다는 걸 알아서도, 더 많이 가지는 것도, 목표나, 계획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삶은 아무리 살아도 알 수 없고, 그 알 수 없음 속에 우리가 산다는 것이, 그리고 우연히 우리가 잠깐 만났다는 것이 너무나 묘하고, 우리가 묘하게 얽힌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래서 그냥 살아지는 거 같습니다. 나는 우리가 같은 것을 좋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확신합니다 당신과 내가 느낀 그 묘함이 같은 것임을 저는 우리의 그 마음을 계속해서 그림으로 옮길 것입니다. 멀리서 계속 지켜봐 주세요.

21.06.04

물질 자체의 색이 아름다운지, 물질을 비추는 빛이 아름다운지 모든것이 둘로 갈라져 실은 하나임을 내비치는 과정, 중첩重疊

 

21.04.03

 

아, 어떻게 보면 저는 서양과 동양의 조화를 구하는 것 같기도 해요. 서양은 이성중심적인 형식적인 표현을 강조하는 반면 동양은 뉘앙스를 강조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구성(composition)이라기 보다는 흐름, 선이 말하는 뉘앙스인것 같아요. 어떠한 면을 축소하고 함축하여 구성하기보다는 전체적인 결과 흐름을 통해 표현하고 싶습니다. 선이 바람과 같이 느껴졌으면 좋겠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뉘앙스를 화면에 표현하고자 합니다.
In a way, I am interested in merging the East and the West. Western school of thoughts emphasizes rational and formal expression, whereas, in the East, we emphasize nuance. What I want to express in my work isn’t composition; instead, it is the lines’ flow and nuance. Maybe I can describe it more like a grain. I want my lines to feel like wind… I want to express this ineffable nuance of Nature through my painting.

-전시 인터뷰 중

21.01.27

“흠집 투성이의 그림”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점점 흠을 가리려고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싫었다. 흠을 가리려고 예술을 할 거였으면, 이 일을 지속할 이유가 없어졌을 것이다. 그 때 이후로 오히려 그 흠을 더 드러내자고 마음 먹었다. 이 흠을 살려보자고 마음먹었다. 예술을 하며 살아 간다는 것에 매일 감사해왔던 이유는 진실되게 말할 수록 그것이 언젠가는 반드시 응답한다는 믿음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지금 내그림이 나는 그래도 가장 내 마음에 든다. 잘그려서도, 특출나서도 아닌, 가장 스스로에게 솔직한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흠집투성이다. 그리고 누구나 다 어느정도의 흠집을 가진 채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이 그림은 불편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불안에 떠는 누군가에겐 이 그림이 삶의 안도와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21.01.10

부담을 느꼈었던거 같다. 확실한 건 나는 아직 부담을 즐길 수 없는 상태였다. 가족이 늘었고, 들어오는 일의 스케일은 커졌고, 그래서 그런지 이전의 내 몸과 마음가짐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고, 부족한 것들이 계속 보였다 나는 힘에 부쳤고, 두려웠던 것 같다.달라질 필요가 있었다. 도약이 필요했다. 요즘은 매일 내가 갈 수 있는 한계선을 조금씩 넓혀가고 높여가는 기분이다. 이렇게 까지 해야되나 싶은 생각이 들정도로 그리고 입에서 단내가 날정도로 하고 있다, 그리고 내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영역을 보려고 하고 있고, 내가 할 수 없었던 것 그리고 하지 않았던 것을 돌파해나가고 있다. 그림도 점점 더 예민해 질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되가고 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받아들였기에 망설이지 않게 되었다. 더 예민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 두렵지만 싸우는 법 한계를 뚫고 나아가는 것 늘 감각을, 실수를 개선하는 것 매일 나아간 시선으로 다른 공기를 마셔보는 것 그리고 잠깐의 기지개를 펼 수 있는 것 그게 좋다 부족하기 때문에 예술을 할 수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할 수 있는 것보다 계속 지속할 수 있었던건지 모른다. 부족한 사람은 늘 채울 게 많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그런 부담 속에서도 여유로운 웃음과 위트를 가진 그림이, 사람이 되고 싶다.